저녁 여섯 시 반의 지하철에서 우리는 대개 같은 자세로 서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화면을 아래로 밀어 올리면서요. 오늘 하루 동안 읽은 글자의 양을 헤아려 본다면 아마 책 한 권은 거뜬히 넘을 겁니다. 메신저의 짧은 답장, 기사의 제목, 누군가 공유한 링크의 첫 문단, 광고 문구와 알림창의 한 줄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읽은 문장 가운데 무엇이 남았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많이 읽었는데, 읽은 것이 없는 느낌. 이 글은 그 묘한 허기에서 출발합니다.
읽는 속도는 분명히 빨라졌습니다. 눈은 문단의 첫 줄과 마지막 줄만 훑고도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해 내고, 손가락은 흥미가 식는 순간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효율이라는 말로 설명하면 나쁜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정보를 빨리 얻는 일은 분명 능력이니까요. 다만 그 능력이 모든 글에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정보를 찾는 속도로 문장을 읽으면, 문장은 정보 이상의 것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오래 고민해서 고른 단어의 무게, 쉼표 하나가 만들어 내는 숨의 길이, 문단과 문단 사이에 일부러 남겨 둔 여백 같은 것들은 빠르게 지나가는 눈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종이책을 펼쳐 놓고 저녁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 몇 쪽은 낯설 만큼 느리게 읽혔습니다. 두 줄을 읽고는 휴대폰이 있는 쪽으로 손이 갔고, 한 문단을 읽고는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대목에서 문득 멈추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문장은 아니었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접으며 현관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두어 줄이었는데, 읽는 순간 제 몸이 그 현관의 공기를 기억해 냈습니다. 젖은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신발장 옆에 번지던 축축한 냄새 같은 것이요. 저는 책을 무릎에 내려놓고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읽는 속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라, 읽는 깊이가 달라진 순간이었습니다.
건너가는 읽기, 머무르는 읽기
그날 이후 저는 읽는 일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건너가기 위한 읽기입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글을 지나가는 읽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머무르기 위한 읽기입니다. 도착할 곳이 따로 없어서, 글 한복판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인 읽기입니다. 두 가지 모두 소중하지만, 오늘 우리의 하루에는 앞의 것만 가득합니다. 머무르는 읽기에는 시간을 내야 하고, 시간을 낸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어도 우리는 머무르는 읽기를 자꾸 내일로 미룹니다.
속도를 되찾는다는 말은 그래서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보통은 빠르게 읽는 법을 배우자고 하지, 느리게 읽는 법을 배우자고는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되찾는다’는 느리게 읽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 아닙니다. 내 몸에 맞는 속도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자는 뜻에 가깝습니다. 어릴 적 누군가의 무릎 옆에서 그림책을 읽던 속도, 방학 오후에 만화책을 배에 올리고 누워 있던 속도, 좋아하는 사람의 편지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해 읽던 속도. 그때 우리는 속도를 조절한 것이 아니라, 문장이 허락하는 속도로 읽고 있었습니다.
한 줄을 옮겨 적는 저녁
그 속도를 되찾는 데에 거창한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도해 본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휴대폰을 다른 방 충전기에 꽂아 두는 일, 읽을 글을 미리 하나만 정해 두는 일, 그리고 읽다가 마음이 머무는 문장이 있으면 연필로 밑줄을 긋는 대신 노트에 한 줄 옮겨 적어 두는 일이었습니다. 첫 주에는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읽는 동안 자꾸 해야 할 일이 떠올랐고, 한 쪽을 넘기기도 전에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그래도 그날 옮겨 적은 한 줄이 노트에 남아 있었고, 그것만으로 저녁이 조금 다르게 기억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옮겨 적는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눈으로 읽을 때는 그냥 지나가던 문장도 손으로 한 글자씩 옮기려면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가야 합니다. 쉼표에서 잠깐 멈추고, 마침표에서 숨을 고르고, 어떤 낱말을 쓸 때에는 그 낱말이 왜 거기에 놓였는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필사라는 오래된 공부법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글쓴이의 속도로 걸어 보면, 글쓴이가 걸어 간 길이 몸으로 이해되니까요. 다만 저는 필사를 거창한 수련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길게 이어 가겠다는 결심보다, 오늘 한 줄을 옮긴다는 가벼운 약속이 더 오래 갔습니다.
읽은 것이 남는다는 것
한 달쯤 지나자 노트에는 서른 줄 남짓한 문장이 쌓였습니다. 넘겨 보니 신기하게도 문장들이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제가 고른 줄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여 주는 문장이었습니다. 창가에 놓인 컵의 온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어깨, 비가 그친 뒤 길바닥에 남은 빛 같은 것들이요. 저는 그제야 제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이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취향이, 적게 옮겨 적자 비로소 드러난 것입니다.
읽은 것이 남는다는 말은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읽은 것이 나를 조금 바꾸어 놓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날 옮겨 적은 한 줄이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의 풍경을 다르게 보이게 하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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