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글을 쓴다는 일은 빈 화면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첫 문장을 놓고 몇 번이나 지웠다 쓰기를 되풀이하고, 겨우 첫 문단이 나오면 안도의 숨을 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생성형 AI에게 주제를 말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초안이 나옵니다. 첫 문장을 고민하던 시간은 눈에 띄게 줄었고, 많은 사람이 이 변화를 반기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초안이 쉬워진 만큼 어떤 어려움이 반대편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칼럼은 그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장을 만드는 비용이 낮아질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질지에 대한 편집의 무게는 오히려 커집니다. 저는 이것이 AI 시대에 글을 다루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쓰는 일에서 고르는 일로
생성형 AI는 한 주제에 대해 열 가지 초안을 순식간에 만들어 냅니다. 이전에는 한 편을 완성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면 이제는 열 편의 후보를 만드는 데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 상황에서 병목은 더 이상 쓰는 속도가 아닙니다. 열 편 가운데 어느 것을 남길지, 어느 문장을 고치고 어느 문장을 버릴지 결정하는 일이 새로운 병목이 됩니다.
편집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후보 만들기AI가 열 편의 초안을 빠르게 만듭니다
고르기사람이 남길 글과 문장을 판단합니다
맥락 확인독자와 상황에 맞는지 읽습니다
책임지기내보낼 문장에 이름을 겁니다
고르는 일은 쓰는 일보다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판단을 요구합니다. 쓸 때는 하나의 방향만 정하면 되지만, 고를 때는 여러 방향을 동시에 이해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어느 문장이 독자에게 더 정확히 닿을지, 어느 표현이 더 정직한지, 어느 구성이 읽는 이의 시간을 아껴 줄지 따져야 합니다. 사람의 역할은 쓰는 사람에서 고르는 사람, 곧 편집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럴듯함과 맞음 사이
AI가 만든 문장을 다룰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럴듯함입니다. 생성형 모델은 문법에 맞고 매끄럽고 자신 있는 어조의 글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매끄러운 문장이 곧 맞는 문장은 아닙니다. 존재하지 않는 통계를 인용하고,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사실처럼 서술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을 확신에 찬 말투로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오류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편집자의 첫 번째 일은 확인입니다. 문장에 담긴 사실이 정말 존재하는지, 숫자에 근거가 있는지, 인용이 원문과 일치하는지를 하나씩 살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지루하고 번거롭지만 생략할 수 없습니다. 독자는 글을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검증은 글을 내보내는 사람의 몫입니다. 확인하지 않은 문장을 내보내는 것은 독자의 신뢰를 빌려 쓰는 일과 같습니다.
맥락을 읽는 능력
편집자의 두 번째 일은 맥락의 판단입니다. 같은 문장도 누구에게, 어떤 때에, 어떤 목적으로 건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말은 다릅니다. 생성형 모델은 주어진 정보 안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지만, 그 말이 지금 이 독자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이 시점에 적절한지를 가려내는 일은 아직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이 능력이 흔히 감각이라고 불리는 것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감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오랫동안 독자와 만나 온 경험에서 쌓인 판단의 총합입니다. 어떤 표현이 어떤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겪어 본 사람은, 초안을 읽자마자 어색한 지점을 알아봅니다. 기계는 그 경험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대신 겪지는 못합니다.
책임이라는 마지막 문장
편집의 가장 무거운 부분은 책임입니다. 글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그 글에 대해 누군가는 답해야 합니다. 오류가 있다면 정정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AI가 쓴 글이라고 해서 이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쓴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만큼 내보낸 사람의 책임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이 글을 내보내는 것은 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의 몫과 편집자의 몫
AI
편집자
초안
여러 안을 빠르게 만든다
어느 안을 남길지 정한다
표현
그럴듯한 문장을 이어 붙인다
정확하고 정직한 문장만 남긴다
결과
쓰는 주체가 흐릿하다
내보낸 사람이 답한다
그래서 좋은 편집은 어떤 표현을 책임지고 내보낼지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기계가 만든 문장 가운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문장만을 남기고, 책임질 수 없는 문장은 고치거나 지웁니다. 이때 지우는 문장의 수가 편집자의 성실함을 보여 줍니다. 쉽게 만들어진 글일수록 지울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AI와 함께 일하는 편집의 방법
그렇다고 AI를 멀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AI를 잘 쓰는 사람이 더 좋은 편집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쓰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야 합니다. 첫째, AI에게 정답을 구하지 말고 선택지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완성된 글을 요구하기보다 서로 다른 관점의 여러 초안을 받아 비교하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둘째, AI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않고 내 문장으로 한 번 옮겨 쓰는 것입니다. 옮겨 쓰는 과정에서 어색한 부분이 드러나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발견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글은 비록 출발점이 기계였더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글이 됩니다. 셋째, 사실을 확인하는 단계를 건너뛰지 않는 것입니다. 편리함에 취해 이 단계를 생략하면 글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독자가 원하는 것
독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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