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만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찾았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오 분쯤 걸으면 나오던 골목이었습니다. 기억 속의 그 길은 어른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에도 넉넉할 만큼 넓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 보니 골목은 놀랄 만큼 좁고 짧았습니다. 담벼락은 제 어깨보다 조금 높았을 뿐이고, 끝 모퉁이까지는 서른 걸음도 되지 않았습니다. 길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제가 자랐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지도 앱에 같은 골목을 입력해 보았습니다. 화면에는 가느다란 회색 선 하나와 건물 번호, 그리고 ‘○○길 12’라는 건조한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이름이었지만 제 기억 속의 골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 걸어 본 사람에게 골목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이름을 가집니다. 그날 저는 제 골목에 어떤 이름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았습니다.
비 오는 날의 모퉁이
첫 번째 이름은 ‘비 오는 날의 모퉁이’였습니다. 골목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자리인데, 비가 오면 그곳에 늘 커다란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산을 쓰고도 그 웅덩이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저는 일부러 한가운데를 첨벙첨벙 밟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신발이 젖어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현관에서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혼내는 얼굴이면서도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자리에 서 보니 웅덩이는 없었습니다. 포장이 새로 되어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 냄새는 어쩐지 그대로였습니다. 젖은 시멘트 담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을 때, 저는 열 살로 돌아가 신발 속의 물컹한 감촉을 떠올렸습니다. 이름은 사라졌어도 그 이름이 가리키던 장면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 혼자 심부름을 갔던 길
두 번째 이름은 ‘처음 혼자 심부름을 갔던 길’입니다. 여덟 살 무렵, 어머니가 처음으로 혼자 두부 한 모를 사 오라고 하셨습니다. 가게는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을 한 번 건너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동전을 두 손에 꼭 쥐고, 저는 속으로 “두부 한 모, 두부 한 모”를 계속 외우며 걸었습니다. 말을 놓치면 안 될 것만 같았습니다. 골목은 그날따라 유난히 길었고, 지나가는 어른들의 다리가 모두 커다란 나무 같았습니다.
가게 아저씨가 포장해 준 두부를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저는 두부가 흔들릴까 봐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조심 옮겼습니다. 골목 입구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 것을 보았을 때의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 저는 이 골목이 무섭기만 한 곳이 아니라 돌아올 곳이 있는 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길에 이름이 생기는 순간은 대개 이렇게 무언가를 무사히 건너고 돌아온 날입니다.
친구를 기다렸던 담벼락
세 번째 이름은 ‘친구를 기다렸던 담벼락’입니다. 골목 끝 모퉁이 집의 담벼락은 약속 장소였습니다. 약속이라고 해도 시간을 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누가 먼저 도착하든 그 담벼락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을 뿐입니다. 먼저 온 사람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발끝으로 땅을 긁으며 친구를 기다렸고, 나중에 온 사람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뛰어왔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면서도 이상하게 즐거웠습니다.
그 담벼락은 다 헐리고 지금은 작은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건물이 사라졌어도 기다리던 마음의 모양은 남아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장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서 있던 몸에 새겨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장소가 달라져도 몸은 그 자리를 기억하고, 비어 있는 땅 위에 보이지 않는 담벼락을 다시 세웁니다.
골목에서 만난 사람
그날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어릴 적 이웃을 만났습니다. 담벼락 옆 구멍가게를 하던 아주머니셨는데,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계셨습니다. 저를 알아보시지는 못했지만, 제가 어느 집 아이였다고 말씀드리자 손뼉을 치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가게 문을 닫은 지 오 년이 되었다고, 지금은 그 자리에 작은 카페가 들어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 우리 땐 아이들이 와서 십 원짜리 과자를 사 갔는데.”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는 동안 저는 가게 앞의 평상과 여름이면 그 위에 놓여 있던 수박 한 통을 떠올렸습니다. 이름이 사라진 가게가 아주머니의 기억 속에서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사라진 이름은 그렇게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조용히 옮겨 다니며 살아남습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일
저는 이 이름들을 노트에 적으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왜 장소에 이름을 붙이려 할까요. 지도에 정해진 이름만으로도 길을 찾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사적인 이름을 만들어 부릅니다. ‘그 빵집 앞’, ‘큰 은행나무 있는 데’, ‘할머니 집 가는 길’ 같은 이름들입니다. 이런 이름은 주소로는 쓸모가 없지만 기억으로는 가장 정확합니다. 그 장소에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장소를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장소와 관계를 맺는다는 뜻…